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뜬금없이 우리나라 국기(國旗)인 태극기 관련 ‘대한민국국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발의자인 민주당 이기헌 의원을 비롯한 박지원·정동영 등 11인이 12일 국회에서 발의한 ‘대한민국국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태극기의 역사성과 의미를 재정립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조선의 고종이 1883년 3월 6일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여 매년 3월 6일을 ‘태극기의 날’로 지정하고 태극기의 날부터 1주일을 태극기 주간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아울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태극기의 날(태극기 주간을 포함한다) 취지에 적합한 행사와 교육·홍보사업을 실시한다.
이들의 주장은 고종이 태극기를 국기로 공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아 태극기의 가치를 되새기고 정치적 오용을 방지하자는 데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이 개정안이 지닌 문제점은 적지 않다.
◇태극기의 정치화를 막겠다며 정치화하는 아이러니
법안의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태극기가 특정 정치집단의 집회나 정치적 주장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특정 집단의 상징으로 오인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태극기가 특정 진영의 도구로 보이니 그 오해를 해소하자는 논리다.
그러나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자, 모든 국민의 공동 자산이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집회에 국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 국기를 통해 국민은 ‘나는 이 나라의 주권자이며, 이 나라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규정짓고 정치집단화된 상징으로 취급하는 시각 자체가 이미 태극기를 정쟁의 틀 안에 가두고 있다.
법으로 ‘태극기의 날’을 지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홍보·행사를 의무화하는 것은, 태극기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상징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1883년 3월 6일, 과연 태극기의 기원으로 적절한가?
법안은 고종의 칙령에 따라 태극기가 국기로 공포된 날인 1883년 3월 6일을 ‘태극기의 날’로 지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역사적으로 많은 논쟁을 낳을 수 있는 선택이다. 1883년 3월 6일 이전에는 조선에 국기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다.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등 외교 현장에서 태극기가 사용되기는 했으나 공식적으로 국기로 인정받은 것은 1883년 3월 6일 고종의 왕명 이후인 것은 맞다.
그 이전에는 ‘공식 국기’로서의 태극기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 국기 제작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되었다. 현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동안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1919년 3월1일 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계승되었다.
현행 태극기 규격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10월 15일에야 최종 확정 공포되었다. 따라서 그 이전의 태극기는 공식 태극기라 할 수가 없다. 즉,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과 민주정신이 담긴 태극기는 고종이 아니라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을 외친 민중과 임시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과정 속에서 의미를 축적해온 것이다.
고종 시기의 조선 정부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나라를 외세에 내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시기를 ‘태극기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오늘의 국민적 자긍심과도 꼭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국기는 정치 도구가 아니다
태극기가 특정 정치집단에 의해 사용된다고 해서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내포한다. 이는 정치권이 국기를 ‘자기 편’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일 수 있다. 정작 태극기의 본질은 진영과 정당을 넘어, 국민 모두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법안 발의자 중 일부가 과거 고위공직자였던 점도 주목된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체부 장관·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 후보를 지낸 정동영 등이 법안에 이름을 올린 것은 국기를 과거로 회귀시키는 상징적 의도로 읽힐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은 시민의 태극기 사용은 위협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점을 이들은 간과하고 있다.
◇태극기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려면
국기법 개정이 진정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 출발점은 정치적 오염 운운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로운 표현권과 역사적 다층성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전체의 상징이지, 조선의 상징도 아니고 특정 진영의 도구도 아니다.
국민이 국기를 드는 행위는 정치가 아니라 ‘국가와 함께하겠다’는 선언이며, 이것을 ‘오해의 소지’로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법으로 국민의 표현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먼저 스스로 태극기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국기는 국민의 깃발이지 특정 정당의 깃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