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은 ‘재판관 전원일치’라는 상징성과 함께 한국 정치사에 깊은 분수령을 남겼다. 그러나 이 전원일치 판결이 사실상 ‘조율된 만장일치’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헌법재판소의 독립성과 법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학계에서 처음으로 정면으로 제기됐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한국정치학회장이며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역임한 원로정치학자 심지연(77) 경남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한국정당정치사’ 제5차 증보판에서 헌재의 판단 과정을 ‘헌법재판소법 위반’이라고 규정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 교수의 지적: "헌법재판소는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
해당 증보판 991쪽에 따르면, 심 교수는 헌재 판결 직후 공개된 문형배 재판관의 발언에 주목했다. 문 재판관은 “재판관 8인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소수 의견도 최대한 다수 의견에 담아내기 위해 조율했다”고 시인했다.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동법 제4조는 명확히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외부의 압력뿐만 아니라 재판관 내부 간 조율이나 합의 정치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심 교수는 이를 두고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파장과 여론의 반응을 우선한 ‘정치판결’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재판관 간 의견 차이를 인위적으로 봉합한 행위는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헌정질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재판관의 양심 아닌 정치적 고려”… 위헌성 논란
문형배 재판관의 발언은 전원일치 판결이 헌재 내부에서 사전에 ‘정치적 혼란 방지’를 목적으로 조율됐음을 보여준다. “몇 대 몇으로 나가면 소수의견을 근거로 다수의견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조율했다”는 그의 설명은, 재판관 개개인의 법적 신념이나 헌법적 양심보다 ‘국민 여론의 납득 가능성’과 ‘정치적 안정’을 우선 고려했음을 뜻한다.
이러한 ‘정치적 조율’은 사법기관의 본분을 넘어선 행위로, 사법권 남용이자 위헌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헌법학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스스로 헌법을 어긴 셈”이라는 격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학계 최초의 구체적 비판… “심지연 교수의 역사적 경고”
심지연 교수의 지적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정당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학계와 국회 입법 현장을 넘나든 실무 정치학자다. 2004년 이후 ‘한국정당정치사’를 통해 노무현·이명박·박근혜·윤석열·문재인 정권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한 그는 이번 5차 증보판에서 윤석열정부를 “내부 분열로 붕괴한 정부”로 단정하며,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이런 식으로 망한 정부는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윤 정부의 실책만큼이나, 그 파면을 확정지은 헌재의 ‘전원일치 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심 교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상황만큼이나, 사법기관의 본질이 흐려지는 현상도 정치발전을 가로막는다”고 경고했다.
‘헌재 신뢰’ 무너뜨린 스스로의 자백
문형배 재판관의 자백성 발언은 단순한 발언 실수가 아니라, 헌재가 스스로 자초한 신뢰 추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헌재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규범을 사실상 어겼음이 드러났다면, 이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권력 분립의 최후 보루가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정치학계 최초로 헌재의 파면 결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은 심지연 교수의 비판은,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역사적 재평가에 중요한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