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하늘 아래 세 명의 그림자가 만난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21세기 들어 권위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마지막 공산 블록의 수뇌부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함께하지만 실상은 아이러니하다.
당사자도 아닌 중국이 승전국 흉내를 내고, 이미 소멸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 후신과 그 망령 같은 꼭두각시 이류 정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3자 회동은 과시의 무대라기보다 불안의 표식처럼 보인다. 세 정상 모두 권력의 정상에 있으나 동시에 몰락의 문턱에 서 있다.
먼저 시진핑. 그가 임기까지 연장하며 누려온 ‘황제적 권위’는 지금 경제 파탄이라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며 국가 부채는 제어 불능에 빠졌고, 청년 실업률은 공산당 통계조차 감출 만큼 심각하다. "내가 죽고 나서 100년간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게 힘을 과시하지 말라"는 덩샤오핑의 유언을 어긴 채 ‘중국몽’을 내세운 그의 리더십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서방 언론과 학계에서는 이번 9월의 승전일 행사가 그의 퇴임 전 마지막 공식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공산당 내부 권력 투쟁은 비밀스럽지만, 그가 더 이상 장기집권의 명분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은 확실해졌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들어갔다. 단기간 승리를 꿈꾸었지만 결과는 수렁이다. 국제적 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궁지로 몰았고, 전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심지어 전통적 동맹이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마저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제국의 부활을 상징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제 사회의 고립자·전쟁 범죄자로 기록될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차르 푸틴’의 초상은 이미 금이 갔다.
김정은은 세 사람 중 가장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러시아 파병이라는 무모한 도박은 어마어마한 인적 손실만 불러왔고, 잇따른 홍수와 자연 재해는 민심을 급속히 이탈시켰다. 무엇보다 혈연 세습으로만 유지되는 권력 구조는 북한 내부에서도 피로감을 쌓아가고 있다. 건강 이상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10대 초반의 어린 딸을 내세워야 할 정도로 후계 구도조차 불투명하다. 김정은은 이미 ‘젊은 지도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 왕따 지도자로 전락했다. 공산 블록 내부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의 고립은 더욱 뚜렷하다.
이렇듯 각자의 사정으로 휘청거리는 세 수뇌가 모여 촬영하는 집단 사진은, 겉으로는 결속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최후의 만찬에 더 가깝다.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연명하는 모습일 뿐, 각자 생존의 시한부 시간을 늘리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 정세 속에서 이들의 연대는 전략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이다. “우리만의 세계가 아직 있다”는 자기 위안.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과 서방 주도의 글로벌 질서는 이미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결속과 국방비 인상, 인도·태평양 안보협력, 우크라이나 지원 연대는 북·중·러 블록을 더욱 좁은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현 정권은 정통성 있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강제 탄핵, 중국과의 비정상적 연계, 선거 공정성 논란 속에 탄생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안보와 외교, 경제 의존 구조가 중국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만약 북·중·러 수뇌부가 무너진다면, 한국 정권 역시 그 파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도미노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권위주의 블록의 균열이 드러나면, 그에 기대어 있던 모든 정치적 구조물 역시 함께 흔들린다. 모든 걸 다 아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혁명과 숙청’이 진행 중인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동맹 대한민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누가 먼저 무너질 것인가. 시진핑의 경제 파탄이 먼저일까, 푸틴의 전쟁 실패가 먼저일까, 아니면 김정은과 이재명의 체제 불안정이 먼저일까.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은 늘 안에서부터 썩어 무너졌다. 밖에서의 압박은 도화선일 뿐, 실질적 몰락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3일 베이징에서의 3자 만남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외견상으로는 연대를 과시하지만, 실제로는 불안과 공포를 나누는 자리가 된다. 그것은 권력의 정점에서 찍는 마지막 기념사진일 수도 있다.
세 사람은 스스로를 ‘역사의 주역’이라 부르고 싶겠지만, 역사는 그들을 퇴장의 인물로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공산 블록의 마지막 그림자는 붉은 깃발 아래서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다. 따라서 붉은 깃발 아래 찍은 3인의 사진은 기념이 아니라 묘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광경을 보며 다시금 묻는다. 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에 설 것인가. 민주주의와 자유의 진영인가, 아니면 권위주의의 잔영에 기대 흔들리는 회색지대인가.
베이징 회동이 최후의 만찬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 질서의 전주곡으로 남을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세계는 이미 미국 주도로 재편되고 있으며, 북·중·러는 스스로의 몰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의 미래도 아이러니하게 베이징 최후의 만찬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비극이다.
작가·언론인
세계일보 기자·문화부장·논설위원
한국통일신문·시사통일신문 편집국장·대표
스카이데일리 논설주간·발행인·편집인·대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