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해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기종(65)이 2년 뒤 만기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단순한 개인의 폭력 행위를 넘는 외교적 사건이었다. 미국 대통령의 외교 권한을 위임받은 동맹국 대사를 공개 석상에서 공격한 사건은 명백히 국가 간 신뢰와 외교관계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중대 범죄였다.
하지만 사법당국은 끝내 이 사건의 배후를 규명하지 못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역시 무죄로 결론 났다. 당시 재판부는 “북한 활동에 호응하거나 찬양·고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실체 규명 없는 판결은, 범죄의 본질을 가린 채 공백을 남긴 채로 끝났다. 그리고 그 결과, 김기종의 출소는 또다시 외교적 불씨로 되살아나고 있다.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조찬강연회 도중 김기종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24cm 흉기로 리퍼트 대사의 얼굴과 손목 등을 수차례 찔렀다. 리퍼트 대사는 얼굴에 80바늘을 꿰매고 왼팔 전완부 신경 접합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었던, 살인의도에 근접한 명백한 공격이었다. 법원 역시 김기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를 인정해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김기종이 북한 문헌을 다수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법원은 국가보안법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역시 배후나 조력자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이처럼 실체가 불명확한 채 판결이 종결되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여전히 많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그는 단독범이었는가? 그의 공격은 우발적인 범행이었는가? 국민 다수가 여전히 이 사건을 석연찮게 여기는 이유다. 특히 당시 리퍼트 대사가 ‘이재명 대통령의 청소년기 거주지’인 경북 안동을 다녀온 직후 피습을 당했다는 점,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최근 미국 국무부 전직 국제형사사법 대사였던 모스 탄이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 등은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는 의심을 더하고 있다. 더불어 ‘이재명의 낙동강 사건’과 같은 논란까지 겹치며, 김기종 사건은 다시금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재조명되고 있다.
물론 사법 판단은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외교 테러 사건에 대한 정치적 해석과 그 여파는 국민의 인식과 국제사회의 시선에 따라 좌우된다. 김기종의 출소에 대한 우려는 단지 그의 재범 가능성 때문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법체계가 이 사건의 진실을 끝내 밝혀내지 못한 데 대한 불신,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질 외교적 혼란 가능성이 더 큰 문제다.
당시 리퍼트 대사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인물이었다. 그의 피습은 미국 내에서 외교 공간에서 발생한 테러적 행위로 인식됐고, 미국 정부도 예외적인 경계심을 표출했다. 그럼에도 한국 사법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충분한 수사력과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김기종의 출소 이후 우리 사회와 외교관계에 다시금 부담이 될 수 있다.
김기종의 복귀는 단순한 전과자의 출소가 아니다. 미완의 진실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며, 예고 없는 위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가 다시 정치적 성향이 강한 활동에 연계될 여지는 없는지, 혹은 외부 세력이 그를 상징적으로 활용하려 하지는 않을지, 정부와 사회는 철저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의 출소 이후 일정 기간 감시 대상 지정 등 제도적 장치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신뢰로 유지된다. 한·미 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우호를 넘은 안보·경제·문화 전반에 걸친 전략적 동맹이다. 그런 한·미 관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인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은 단지 과거의 흉악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이 국제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와도 직결된다. 정부는 이 사안을 방관해선 안 된다. 김기종의 출소 전후로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외교적 파장을 미리 점검하고, 필요한 대응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외교관은 어느 나라에서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외교관을 향한 폭력은 곧 국가의 자존과 국제적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며, 김기종 사건은 그 치명적인 선례다. 이 사건의 마침표는 그의 출소가 아니라,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는 철저한 준비와 책임 있는 대응일 것이다.
작가·언론인
세계일보 기자·문화부장·논설위원
한국통일신문·시사통일신문 편집국장·대표
스카이데일리 논설주간·발행인·편집인·대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