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파괴(운송·에너지·통신) △철도 시설 파괴—열차 운행·물류 차단 목적 △유류 공급 인프라 파괴(유조창·미군 유류라인 포함)—연료 공급 차단으로 군·민간 이동·가동 마비 유도 △가스·전력 시설 파괴—도시 기능·공장·병원 등 필수기능 마비 유도 △통신중심지(예: IDC) 파괴—인터넷·서버 서비스 전면 마비 목적 ◈통신·전자전·사이버 공격 △레이더·감시체계 마비(해킹·전자교란)—방공·조기경보 능력 약화 △통신망 교란·망 파괴(무선·유선 포함)—명령·보고·비상연락 체계 마비 유도 ◈물리적 무력화·탈취 △무기·탄약 탈취(무기 탈취)—적·테러 조직의 전력 보강 목적 △총기·폭탄 구입·제조—직접적 폭력행위 실행 수단 확보 ◈내부 혼란·정보전 △주요 시설 근무자 포섭(내부자 확보)—내부 기밀·접근권 활용, 시설 방호 무력화 △선전·심리전(대중동원·선전전)—사회 불안·혼란 조성, 저항 능력 약화.”
수사당국이 밝힌 이석기 전 의원 주도 ‘RO(혁명조직) 권역별 모의 주요 내용’이다. 내란음모가 발각돼 처벌 받은 이 전 의원이 꿈꾼 ‘서울 한복판에서 체제 전복을 시도한 세상’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국가 전산망 하나가 멈추자 일상과 행정·안전·생계가 동시다발적으로 흔들리는 풍경, 그가 상상했던 혼돈이 현실 세계에서 구현된 느낌이다. 26일 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로 국가 전산망 기능이 완전히 ‘먹통’이 된 초유의 사태는 27일 주말 하루 동안 시민 생활과 행정을 마비시키며 그 충격의 범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모바일 신분증·정부24·국민신문고·우체국 금융과 택배·병원 접수·화장(火葬) 예약 등 실생활과 직결된 시스템이 전면 중단됐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둔 상황에서 금융·물류 서비스가 멈추면서 시민 불편이 극에 달했다.
충남 천안의 주부 정모(58) 씨는 “어제 아들에게 보낸 택배가 어디 있는지 조회가 되지 않는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우체국 체크카드 결제를 시도한 이모(53) 씨 역시 “은행·카드사 점검 중이라는 오류 메시지만 뜨고 결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순한 금융·물류 서비스 차질이 일상 불편을 넘어 추석 연휴 물류 대란 우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의료기관에서도 혼란은 마찬가지였다. 모바일 신분증 기반으로 진료 접수와 본인 확인을 하는 병원 시스템은 하루 종일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을 찾은 김모(45) 씨는 “밤사이 시스템 장애가 발생했다는 안내를 받지 못해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접수가 안 돼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은 직장인 임모 씨도 “아이 접종 기록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의료기관 전산 의존도가 높을수록 단순 시스템 장애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현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장례 서비스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이 접속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화장 예약을 해야 하는 유가족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한 시민은 “지금 장례를 치러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라도 빨리 시스템이 복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 서비스가 전산망 의존 구조를 탈피하지 못할수록, 개인의 삶과 직결된 시스템 장애는 사회적 혼란으로 확산된다.
공항과 여객터미널에서도 혼란은 이어졌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모바일 신분증 없이 승선하려던 승객들이 무인민원 발급기를 이용할 수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김포국제공항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려던 김모(41) 씨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정부24 오류로 발급이 불가능했다. 결국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항 당국은 SNS와 홈페이지를 통해 “실물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 달라”고 안내했지만, 이미 발생한 혼란을 완전히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민원 서비스도 전산망 마비의 영향을 받았다. 전북특별자치도는 홈페이지에 ‘일부 서비스 중단 안내’ 배너를 게시했다. 여권 방문 예약이나 도청 견학 예약 시 발송되는 확인 문자조차 전송되지 않아 시민 불편이 확대됐다. 공직자 내부 결재와 공인인증서 로그인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행정의 연속성과 신뢰성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주말을 넘어 평일까지 복구가 늦어지면 내부 결재와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안전망에서도 문제가 나타났다. 119 신고는 전화 통화로는 가능했지만, 문자·영상·웹 등 다매체 신고는 불능 상태였다. 특히 자동 위치 조회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긴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졌다. 다행히 경찰 112 시스템은 본청과 지방청별로 독립 구축돼 정상 작동했지만,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한 사건 접수 안내 메시지 및 알림은 중단됐다. 전산망 의존도가 높을수록 단일 장애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번 화재의 직접 원인은 UPS 배터리 팩 폭발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 사고로 보기 어려운 점은 전산망 전반이 마비되는 속도와 범위다. 전산망 취약성, 백업·복구 체계 부실, 비상 시 수기 절차의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집중형 전산망 구조와 핵심 인프라 단일화는 사고 발생 시 피해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교훈을 남긴 사건이다.
정부는 우선 전산망 복구와 대체 수단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핵심 인프라 분산화·오프라인 절차 표준화·비상 대응 매뉴얼 재검토 등 중장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디지털 전환 속도와 안전장치 간 균형을 재평가하고, 국민 생활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 설계가 필요하다.
이번 화재로 모바일 주민증·정부24·국민신문고 등 647개 시스템이 동시에 멈춘 현실은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민들은 전산망 하나가 마비되는 순간, 생활과 행정·안전·생계가 동시에 흔들리는 모습을 체감했다. 디지털 의존 사회에서 단일 장애가 국가 기능 전반과 국민 일상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단순 기술 사고를 넘어 이번 사태는 국가 전산망 관리와 디지털 행정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한다.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국가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형 구조의 위험성을 분산하고 비상 대응 매뉴얼과 대체 절차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행정 의존 사회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종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