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7 (토)

[조희문칼럼] 암표상의 기막힌 감각과 무딘 정치권

영화의 최고 전문가는 암표상이 아닐까. 지금은 영화관 앞에 줄을 서는 관객도 없고 그들을 노리는 암표상도 없다. 매표도 전산처리 되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가능하다. 혹시 스포츠 분야의 큰 경기나 인기 가수의 콘서트 같은 경우에는 띠엄띠엄 암표가 나돌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거래다. 암표에 관한한 영화가 원조라고 한들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암표상의 능력은 어떤 영화가 뜰지를 가늠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요즘은 영화제작단계부터 이런 저런 홍보를 시작하기 때문에 관객도 어느 정도의 판단을 하게 되지만 80년대 이전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암표상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 해당 영화의 흥행이 어느 정도일지를 판단해야 한다.

 

관객이 몰릴 영화인데도 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인기가 없는 영화인데도 표를 왕창 쥐고 있다면 손해를 볼게 뻔하다. 어느 영화의 표를 얼마만큼 확보해야 할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표는 확보해야 한다. 사업의 승패를 좌우하는 1차 선택이다.


두 번째는 표값을 얼마로 할 것인가의 결정이다. 너무 비싸게 부르면 팔기 힘들 것이고, 너무 적게 부르면 이익을 내기 힘들다. 여기에는 표를 다 팔지 못했을 때의 손실까지를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표값의 1.5배나 2배 정도가 무난하다. 영화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비싸지기도 하고 약간의 웃돈을 붙이기도 한다.


세 번째는 시간 싸움이다. 일단 표를 확보하고, 가격을 결정했다면 어떤 사람에 표를 팔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표를 사지 않을 사람과는 밀고당기는 흥정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가 영업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지조각이다. 그것도 표값을 고스란히 물고있는 비싼 휴지다.


팔지 못하면 암표상 혼자 손해를 뒤집어 써야한다. 혼자 온 손님보다는 연인끼리 온 남자 손님이 우선 접근 대상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흥정을 오래 끌 수는 없다. 한사람에 표를 팔려고 오래 매달렸다가는 다른 표가 썩어 버리기 때문이다.


암표상은 이 모든 상황을 짧은 시간 안에 계산 맞추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금쪽같은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익도, 손해도 자신의 몫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관심은 세를 불리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누가 민심을 잡느냐에 사활을 건다. 자연히 후보들 간의 연대도 초미의 관심이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후보단일화는 특히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이준석 후보 쪽에서 단일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불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입법부뿐만 아니라 사법‧행정도 징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국민적 여론이 폭발하는 지경이다.


이준석 후보는 대략 10% 내외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준석의 지지율이 김문수 후보 쪽으로 합쳐지면 판세가 역전의 분위기로 갈 수 있고, 유권자의 표를 쪼갠다면 이재명 쪽이 유리할 수 있다. 고스톱 화투판에서는 이런 경우를 가리켜 ‘쇼당’을 부를 수 있는 기회라고 한다. 어느 쪽을 밀어주는 가에 따라 승부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이준석 후보에 대한 평가는 영악한 애늙은이 같다는 시선이 많았지만 김문수 후보측이 간곡하게 손을 내민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생각한다면 작은 힘이라도 뭉쳐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준석 후보가 한 일이 작지는 않다. 그동안 세 차례 진행된 후보 간 TV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의 빈틈과 헛점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이 후보의 무력함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다. 김문수 후보가 혼자 나셨다면 상대 후보의 집중 공세에 말렸을지도 모를 부분을 이준석 후보가 막아주고 역공까지 한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인 셈이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이겼다하더라도 전쟁에서도 이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상황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후보가 단일화를 거부할수록 사표가 될 우려 때문에 김문수 후보 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이준석 후보의 몸값이 높았지만 후보단일화를 최종적으로 거부하기로 한 때서부터는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쓸 수도 있다. 본인에게도 아슬아슬한 도박이다. 승리에 기여한 일등 공신의 지지를 받을지, 표를 쪼개는 바람에 이재명의 정권 장악을 도와준 우파 국민의 비난을 받을지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판단이 영화관 앞의 암표상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며칠 사이에 극적인 변화가 생길지 지켜볼 일이다.   

조희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