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 조지아주 현대·LG 공장 한국인 노동자 대규모 구금·추방 사태와 관련해, 미국 정부는 “deep regret(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이를 두고 “미국이 공식 사과했다”고 국민 앞에 발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Regret과 Apology의 본질적 차이 * Regret(유감): 외교적 완곡 표현으로, 상대국의 불편한 감정을 달래려는 제스처일 뿐이다. 책임이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수준에 머문다. * Apology(사과) 잘못과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강한 의미다. 국제 관계에서 사과는 대개 보상·재발 방지 조치 같은 후속 조치와 연결된다. 만약 사과(apology)였다면? 이재명의 말대로 미국이 한국에 공식 사과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야 한다. 1. 미국 정부는 부당하게 구금·추방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보상이나 제도적 보완을 제시했어야 한다. 2. 한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미국에 보상을 요구했어야 한다. 3. 노동자들 역시 피해 당사자로서 법적·경제적 보상을 청구할 근거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한국 정부, 노동자 누구도
1. 외교적 의미: 인정은 유지되지만 제한적 트럼프와의 만남은 이재명에게 국제적 인정의 상징적 효과를 주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회담을 수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재명을 한국 정부의 협상 파트너로 대우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조건부 인정에 그쳤고, 구체적 성과보다는 미국 국익을 중심으로 한 거래가 본질이었다. 2. 정치적 의미: 한국 내 홍보용 효과는 단기적 이재명은 귀국 직후 회담을 성과로 포장하며 부정선거 논란과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문제를 희석하려 했다. 하지만 국내 정치권과 언론은 곧 다시 기존 쟁점들에 집중하면서, 회담의 파급력은 단기적 카드로 소진되는 양상이다. “트럼프가 상대했다”는 사실은 일시적 방패는 될 수 있어도, 장기적 정통성 강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3. 실질적 의미: 조건부 협력 구조가 뚜렷해짐 트럼프는 회담에서 한국산 철강·조선·배터리에 대한 관세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북핵 문제 등 미국 이익 중심 의제만 다루었다. 이는 이재명이 얻은 외교적 인정이 결국 미국 국익에 종속된 조건부 협력임을 보여준다. 이재명이 국내에서 이를 과장해 활용할 경우, “실제 성과는 미국 요구를 들어준 것뿐”이라는 역풍을 맞
오늘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우파 진영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트럼프는 회담 직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 같다”고 언급하며 한국 정치 상황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작 공식 회담에서는 한국의 부정선거나 정치 탄압,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구속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실망감을 드러냈지만, 이는 트럼프의 정치적 성향과 미국 정치 구조를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트럼프의 성향: 철저한 국익 우선주의 트럼프는 전통적 이상주의 외교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미국의 국익을 중심에 두고, 모든 외교 문제를 거래와 협상의 대상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 내부의 부정선거 논란이나 정치적 탄압 문제는 미국 국익과 직결되지 않는 한 직접 개입할 이유가 없다. 이는 그가 냉정하고도 일관되게 보여온 정치적 본능이다. 미국 정치의 기본: 국민의 움직임이 먼저 미국 정치와 외교의 기본은 해당 국가 국민의 행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개입한 사례들은 모두 국민적 저항과 민주화 열망이 내부에서 먼저 폭발한 뒤, 국제사회와 미국이 이를
대한민국은 헌법 제2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국민이 믿고 봐야 할 공영방송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진정한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KBS, MBC 등 공영방송이 보여주는 보도 행태는 많은 국민들에게 편향 보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이사 선임 구조에 있다. 현재의 지배구조는 정권과 특정 노조 세력, 특히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이들은 언론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저버리고, 방송사를 정권의 선전 도구나 이념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할 때다. 정치와 노조로부터의 철저한 중립, 바로 그것이 공영방송 개혁의 첫 단추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방식을 다원화해야 한다. 현재처럼 정치권이나 노조 중심의 추천이 아닌, 학계, 언론전문가, 시민사회, 소비자 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이사추천위원회’ 설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이사 후보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며, 이 과정은 전적
나는 올해 8월 15일에 조기를 걸기로 작정했다. 예년 같으면 건국절이자 광복절이라 하여 경축기를 걸었지만 올해에는 대한민국의 침몰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15일은 광복 80주년이자 망국의 원년이다. 6·25전쟁 중에는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한반도가 적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공산주의 침략자들에게 대한민국을 짓밟히게 둘 수 없다는 불같은 애국심이 있었고, 수만리 먼 이국 땅에서 목숨을 바친 유엔군이 있었다. 모두가 대한민국을,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신념이 가득했다. 80년 전 이 땅에는 기적같은 해방이 찾아왔다. 36년간 이 강토와 국민을 통치해왔던 군국주의 일본이 미군이 주축을 이룬 연합군에게 항복을 하면서 갑자기 세상이 바뀐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건지 가늠하기도 전에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의 조종을 받는 김일성 세력이 남북한을 분할했다. 해방은 되었지만 어떤 나라를 되찾은 지는 분명치 않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것이 아니냐고? 그때는 대한민국이 건국되지도 않았다. 조선은 대한제국의 선포로 500년을 이어오던 세월을 접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게 바쳐 스스로
최근 국민의힘 당 윤희숙이라는 여자가 무슨 혁신 대표를 맡으면서, 윤석열 비상계엄을 반성하는 발언을 한 모양인데, 한마디로 근본없는 천하쌍것이라 할 만하다. 계엄 선포 당시의 상황, 즉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을 비롯 내각 주요인물에 대한 30여 차례 탄핵을 하면서 국정을 마비시키고, 경찰을 비롯 온갖 특활비를 제로로 만드는 전횡과 예산을 일방적으로 민주당 유리하게 편성하는 과정 등이 정상이라는 판단이 없다면, 윤희숙의 발언은 쌍것 아니면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더구나 이 상황을 국힘당이 오히려 반성한다는 것은, 그건 민주당 프락치나 할 짓이다. 민주당이 역사 앞에서 두고두고 반성해야할 짓을 왜 국힘당이 반성해야 하는가. 오직 이재명 보호를 위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던 그 모든 행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치욕이었다. 윤희숙은 그렇다치고. 나머지 국힘당 놈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들은 야당으로서 집권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 창조적인 정책 제시 등 차기 집권을 위한 프로그램을 전혀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민주당 이재명 집권 한 달이 지나면서 점점 구체화 되어가는, 뻔히 눈 뜨고 자행되는 국격의 실종 등 자유민주체제 붕괴를 그저 바라보고
오늘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이야기를 해야겠다. 먼저 필자는 ‘국민의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임을 밝혀둔다. 당원도 아니고, 그저 일반시민의 하나이며, 더욱기 필자는 당의 이름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유명인도 아니다. 필자는 의병 계열의 애국우파임은 분명하지만, 흔히 말하는 ‘썩은 보수’는 절대 아니다. 미천 진보는 더욱 아니다. 그동안 필자는 ‘미친 진보’를 적으로 알고 살아왔고, 친북성향의 빨갱이들과 무려 20여 년을 진실과 정의를 겨루며 싸워왔다. 그렇다고 해서 국힘당으로 상징되는 썩은 보수를 아군으로 여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미쳤거나 혹은 썩어빠진 인간들과 필자는 분명히 결을 달리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온갖 범죄로 얼룩진 이재명과 친북·종중으로 오염된 민주당에 맞설 정당이 없다는 점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국힘 당은 국민 전체 60%에 달하는 반(反)좌파 성향의 애국시민들과 보수우익을 아우르거나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이었다. 특히 국힘당 바보들은 자유민주의 가치를 믿고 있는 국민이 99%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 비록 빨갱이일지라도 자유민주를 버리고 살겠다는 국민은 없다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설령 자생간첩이나
현대문학사에서 대한민국 문호로 일컬어지는 소설가 박경리는 그의 소설 ‘토지’에 이런 말을 남긴다. “설네설네 해도 배고픈 설움 겉을라구….” 세상에 아무리 서러운 일이 많다 해도 배고픈 설움만 하겠느냐는 뜻이다. 배고픔이란 두 눈 뜨고 죽어가는 고통이다. 뱃속에 곡기 들어가지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우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 그래서 부모 돌아가신 지극한 슬픔 속에서도 밥숟가락은 놓을 수 없고, 자식 잃어 애간장이 녹아난 다음날에도 식구들 밥 챙기려고 솥단지에 물을 붓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삶을 시작하고 연장하는 최초의 행위가 먹는 것이다. 아기가 첫울음을 터뜨리며 찾는 것이 먹을 것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굶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안다. 쓰디쓴 위액이 넘어오고, 소화(消化) 시킬 것이 없는 뱃속을 방황하던 쓸개즙이 몸속에 흡수되면, 그 노란 쓸개즙이 피부로 나와 눈도 피부도 누렇게 되는 것을 부황(浮黃)이라 한다. 누렇게 부황이 든 얼굴을 잊을 수 없다. 6·25 전쟁이 끝난 1950~60년대 우리 사는 세상의 얼굴들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먹을 것 뿐이었다. 그래서 풀 뿌리를 캐먹고 나무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