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1905년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쓴 사설이다. ‘오늘, 목놓아 운다’는 뜻이다. 을사늑약을 통탄하면서 울분을 쏟아내는 글이다. 다소 길지만 일부를 인용해본다.
‘아아,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大臣)이라는 자들은 자신의 영화와 이익을 바랄 뿐 위협에 겁먹어 뒷걸음치고 벌벌 떨면서 매국의 도적이기를 감수하였다. 아아, 사천 년의 강토와 오백 년의 사직을 타인에게 받들어 바치고 이천만 동포를 노예로 몰아넣었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과 각 대신들이야 새삼스럽게 꾸짖을 것도 없거니와 명색이 참정대신인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명예 구함을 꾀하였던가. …아아, 원통한지고! 아아, 분한지고! 우리 이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사천 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멸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국권을 다른 나라에 갖다 바치고 2000만 백성을 노예 신세로 만든 것을 통탄하며 원통하고 원통할 뿐이라는 피끓는 외침은 절절하지만 나라가 그 지경이 된 것은 몇몇 대신(장관)들만의 잘못인가. 그렇게 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막지 못한 지식인들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120년이 지난 2025년 6월 3일에 또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온갖 비리 혐의로 제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국민투표를 통해서. 120년 전의 열혈지사는 황제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몇몇 대신들의 책임으로 돌렸지만 이번 일은 부정선거로 의심되는 무수한 증거를 남긴 채 다수결에 의해 총통식 독재의 하수인이 되겠다고 선택을 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다수결이라면 이재명이 어떤 인물이던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불의에 승복할 수는 없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총통 민주주의의 대명사‧독재 민주주의의 화신 같은 인물로 역사에 남아있는 그다.
히틀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다. 최고 권좌에 오른 그는 선동과 증오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600만 명이 넘는 유태인을 수용소에서 학살했고, 독일 국민을 전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그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과 미국‧소련까지 전쟁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이재명이 어떤 세상을 만들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고, 경험하지도 못했던 입법‧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초유의 권력자가 된 것은 분명하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3권 분립 체제가 건전한 시스템이고 건강한 상식이지만 그가 대통령에 되는 순간부터 이 체제는 송두리째 무너졌다.
대한민국이 비정상적인 나라로 무너지는 경험은 이미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넘치도록 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우방을 적보다 더 멀리하며 중국에 굴종하는 외교를 펼쳤고, 대한민국 국민이 목숨을 잃는 상황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막지 못했다.
힘도 능력도 없으면서 동북의 균형자이니 조정자 역할 한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우방들로부터는 믿을 수 없는 지도자로 외면받고, 만행을 서슴지 않는 북한에게는 대변인 역할을 하며 환심을 사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삶은 소대가리’라는 모욕적 조롱과 미국과의 직통관계를 맺으려는 과정에 오히려 귀찮은 방해꾼같은 외면을 받았다.
그렇다고 경제나 민생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던 원자력 발전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이곳저곳의 산과 들, 바다를 뒤덮는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어 에너지 위기를 불러왔다. 통계 조작으로 마치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집값이 안정되는 것처럼 요술을 부렸다. 내 편만을 챙기고 지신을 지지하지 않는 주장과 목소리는 깔아 뭉개며 국민을 분열시켰다. 문재인 재임 5년 동안은 대한민국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차별과 특혜와 부조리와 반대한민국 세력이 난무하는 기간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이 대한민국 체제 붕괴 시즌1이었다면, 이재명의 시대는 확장판 시즌2에 해당될 전망이다. 1편에서 하지 못했던 행정과 사법의 구조 변형, 예산의 마구잡이 퍼주기, 추종 세력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법안들의 무더기 통과가 논스톱으로 처리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맛보기가 문재인 재임 기간이었다면, 이재명 시대에는 완결 판을 예고하고 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이재명의 그많은 범죄 혐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방탄하는 법을 만들어 억지로 무죄를 만든다 해도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선거로 뽑은 윤석열 대통령을 취임하자 말자 흔들기 시작한 세력이 바로 이재명이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다. 선거불복의 원조는 바로 이재명 자신인 셈이다.
각종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마침내 나라의 대통령까지 오른 일은 민주국가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되었다 해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상식적 국민의 바람을 언제까지 모르는 척 외면할 수 있을까. 덮으면 덮을수록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번 선거가 마지막 대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선거일까지 위태롭게 명맥을 이어오던 자유 대한민국은 2025년 6월 4일부터는 사라지고 범죄혐의자가 이끄는 범죄국가가 되었다. 장기집권을 위한 모략이 은밀하게 추진될 것이다. 120년 전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생각하는 이유다.
선거 패배의 책임이 누구 때문이라는 원망과 비난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잊지는 말되 그 일에 열을 올려서는 안된다. 정상적인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일이 당장 눈앞의 과제다. 기나긴 싸움이고 가늠하기 힘든 역경이 닥칠 수 있지만 낯선 땅에서 빼앗긴 나라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독립지사 같은 각오와 헌신만이 필요할 뿐이다. 낙담은 가슴에 묻어두자. 대한민국을 온전한 나라로 되돌리는 일에 힘을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