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시골 공무원이 특검 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개발 특혜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고, 단 한 차례의 소환 조사 이후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양평군청 소속 5급 사무관이었다. 그가 남긴 자필 메모는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비통한 기록이다. 메모엔 분명히 적혀 있다. “계속된 진술 요구와 강압, 기억도 없는 답변을 강요당했다” “김선교 의원(국민의힘)을 지목하라는 회유와 추궁이 있었다.” 그는 사실대로 말했지만, 거짓이라고 다그치는 특검 앞에서 자괴감에 무너졌고, 결국 “세상도 싫고, 사람도 싫다”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육체적 폭력을 당한 것도 고문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12시간 넘는 불법 심야 조사, 회유와 압박, 모욕적인 언사 속에서 그가 겪은 고통은 시대가 바뀐 남영동의 또 다른 형태였다. 권력은 바뀌었지만 수사 방식은 여전히 비슷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정권의 태도가 문제다. 특검은 “강압은 없었다”며 손을 뗐다. “식사시간도 보장했고, 안전하게 귀가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절규는 ‘진술서까지 임의로 작성하고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사람이 죽음으로 항의하는 것은 진실이 가로 막혔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 있다면,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건이 터지자 야당은 정권의 폭압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평범한 국민 한 명이 특검의 무도한 수사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유족과 변호인도 특검을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로 고소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도 정작 여당과 대통령은 이 사태에 입을 닫고 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인가, 아니면 고인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의심한다는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단지 선동적인 정치 레토릭이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 그 발언이 실제 국정 운영의 철학처럼 느껴진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을 장악하고, 강제로 끌어내린 전 정부 인사를 무리하게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하루 만에 수갑을 채우고, 멀쩡한 시골 공무원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현실. 이것이 잔인한 권력의 실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명백한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왜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정년도 한참 남은 공무원을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는가.
우리는 이런 나라를 이미 겪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남영동 치안본부 고문치사 사건, 국가폭력이 진실을 왜곡하고 억울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어두운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을 딛고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부했던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태어난 정권이, 이제 권력의 폭력성과 비민주적 수단의 정당화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민주주의의 적이 된 것이다.
이 정권이 보여주는 수사 방식은 정의 실현이 아니라 적대 제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모습이다. 정권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이를 배제하고, 정적을 겨누고, 심지어 무고한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체제 안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아무리 법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한들, 국민은 그 결과로 사람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당신들이 그토록 외쳤던 ‘법치주의’의 결과인가. 검찰을 개혁한다면서 기껏 하는 짓이 멀쩡한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인가.
나 역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이다. 기자로서 공정보도와 사내 민주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싸우다 두 번의 해직을 겪는 등 수십 년을 투쟁적 삶을 살아왔다. 언론인으로,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이 죽음 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공직에 헌신해온 한 공무원이 단 한 번의 조사에 무너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이 단순한 ‘개인적 약함’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었음을 우리는 왜 외면하려 하는가.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런 죽음은 정치적 이용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맞다. 그렇기에 더더욱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 죽음이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잊히고, 시간 속에 묻힌다면, 다음은 누가 희생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어쩌면 당신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가서야 우리는 말할 것인가. “그땐 왜 침묵했느냐”고.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고 있다. 권력은 언제나 절제되어야 하며, 그 힘은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잔인하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지금 이 정권이 보여주는 모습은 분명히 그 반대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책임 있는 자들이 답해야 한다.
다시 묻는다. 이게 당신들이 원하던 민주주의인가.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록할 것이다. 책상을 치면 또 누가 억 하고 죽는 나라였는지를.
작가·언론인
세계일보 기자·문화부장·논설위원
한국통일신문·시사통일신문 편집국장·대표
스카이데일리 논설주간·발행인·편집인·대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