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4 (수)

사법부의 ‘종교인 구속’ 만행, 자유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전광훈 목사 구속은 법 집행이 아니라 본보기 처벌인가

 

사법부의 ‘종교인 구속’ 만행, 자유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전광훈 목사 구속은 법 집행이 아니라 본보기 처벌인가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전광훈 목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이 내세운 사유는 늘 그렇듯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법 집행의 외피를 쓴 채, 국가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박탈하는 가장 거친 수단이 얼마나 쉽게 동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구속은 판결이 아니다. 유죄 확정도 아니다. 그럼에도 구속은 즉각적인 신체 자유 박탈과 사회적 활동의 강제 중단을 수반한다. 사실상 사전 처벌에 준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기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구속에 대해 극도로 인색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그 원칙을 스스로 허물었다.
 
■ ‘도주 우려’라는 주문(呪文), 법치의 방패가 무너지는 순간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예외로 규정한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이는 선언적 문구가 아니라 자유국가 형사사법의 최소 조건이다. 법원이 구속을 선택하려면, 불구속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그러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거주지, 사회적 기반, 공개 활동, 책임 구조 등 도주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요소들은 판단에서 사실상 삭제됐다. 남은 것은 추상적 위험과 판사의 재량뿐이다. 이 순간 ‘도주 우려’는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구속을 정당화하는 만능 주문으로 변질된다.
 
■ 기준 없는 구속은 법 집행이 아니라 ‘선별’이다
사법의 신뢰는 형평성에서 출발한다. 유사한 위험도와 파급력을 가진 사건들에서 누군가는 불구속, 누군가는 구속이라면, 그 차이는 명확한 기준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미 손현보 목사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특정 교단 지도자들을 향한 가혹한 사법 잣대가 이어져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구속을 단발적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종교계를 향한 사법 칼날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라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기준을 숨긴 사법은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 선별하는 권력이 된다. 그리고 선별의 대상이 사회적 영향력과 상징성을 지닌 종교 지도자라면, 그 구속은 수사가 아니라 경고이자 본보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
 
■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 한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이번 사안을 종교 특혜 논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 반대다. 법이 자유 위에 군림하려 드는 순간이다.

종교 지도자의 활동은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중첩되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이 영역을 제한할 때 사법부에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자기 절제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번 구속에서 보이는 것은 절제가 아니라 과시된 권한 행사다.

오늘은 종교인이다. 내일은 시민이고, 모레는 언론일 수 있다. 자유를 제한하는 기준이 낮아질수록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언제든 회수 가능한 허가증으로 전락한다.
 
■ 설명하지 않는 사법은 권위가 아니라 공포다
사법부의 권위는 강제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설명력과 납득 가능성에서 나온다.
기준 없는 재량, 반복되는 추상적 문구, 설명을 회피한 구속은 권위가 아니라 공포의 언어다.

사법은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이기도 하다. 그 방어선이 스스로 허물어질 때, 민주주의는 법의 이름으로 잠식된다.

이번 전광훈 목사 구속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가 자유의 수호자인지, 아니면 관리자인지를 묻는 경고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신호는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