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2의 마두로 단죄”… 이스라엘은 하메네이를 예루살렘의 법정으로 소환하라
주권은 범죄의 방패가 될 수 없다.
이제는 ‘테헤란의 도살자’를 예루살렘의 법정으로 부를 시간이다.
이란 민주화 운동의 외침이 전 세계를 울리고 있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7,000만 이란 국민의 자유를 짓밟고, 반유대 증오와 국제 테러를 국가 전략으로 삼아 중동을 전쟁의 화염 속으로 밀어 넣은 알리 하메네이 정권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
국제사회가 더는 “상황 관리”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결정적 쟁점은 군사적 타격이 아니라, 범죄의 설계자와 지휘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사법적 결단이다.
그리고 이 행동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개입”이 아니다.
이란 민주화 성명서에 응답해, 탄압받는 7,000만 이란 국민의 사법 대리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1. 반유대 증오와 테러 지원: 국제범죄의 핵심 축
하메네이 정권은 수십 년간 반유대 증오를 국시로 선동해 왔다.
동시에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같은 대리 세력에 자금·무기·훈련을 제공하며 전장을 확장시켰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 갈등이 아니라 초국경 테러 지원이라는 국제범죄다.
민간인 학살을 조장하고 국제 항로와 에너지 안보를 위협한 행위는 주권으로 가려질 수 없는 범죄다.
2. 중동 전쟁의 ‘지휘 본부’ 책임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전장의 개별 사건이 아니다.
전쟁을 설계·조정·지휘하는 본부가 테헤란에 존재한다.
꼬리만 자르는 안보는 지속될 수 없다.
‘뱀의 머리’를 그대로 둔 채로는 중동의 항구적 평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메네이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복수가 아니라, 국제법에 기초한 정의의 집행이며 중동 평화의 초석을 놓는 결정적 조치다.”
3. 7,000만 이란인의 자유: 반인륜 범죄에 대한 사법적 해방
이란 인민은 신권 독재 아래 표현의 자유·종교의 자유·여성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박탈당해 왔다.
자의적 구금과 고문, 공개 처형은 반인륜 범죄의 전형이다.
하메네이를 체포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다.
이란인에게 빼앗긴 ‘내일’을 되돌려주는 사법적 해방이다.
4. ‘마두로 모델’은 이미 작동했다
미국은 마두로를 국제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현상금·제재·사법 압박을 결합해 주권의 방패를 무력화했다.
핵심은 명확하다.
현직 통치자라도 초국경 범죄 앞에서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이 실제 집행 단계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이 선례는 하메네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5. 역사적 선례와 법정의 상징성: 예루살렘
이스라엘은 이미 역사의 기준을 세운 바 있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예루살렘 법정에 섰고, 인류에 대한 범죄로 심판을 받았다.
그 재판이 남긴 결론은 단순하다.
주권은 대량 학살과 반인륜 범죄의 방패가 될 수 없다.
하메네이를 예루살렘의 법정으로 소환하는 것은 지리적 선택이 아니다.
역사적 정의의 연속성을 선언하는 상징적 결정이다.
6. 실행 주체의 명확화: 결단은 가능하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결단을 실행할 정치적·정보적 역량이 존재한다.
네타냐후 정부의 정치적 결단과, 모사드의 정보·작전 역량이 결합된다면 하메네이의 체포와 사법 절차 개시는 현실적 선택지로 올라온다.
다만 이 과정은 단독 행동이 아니라, 이란 민주화 성명서에 응답해 국제법을 집행하는 민주주의 동맹의 공조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명분은 흔들리지 않고, 반박은 봉쇄된다.
결론: 정의에 응답할 시간
이것은 이스라엘의 선택이자, 이란 민주화 세력의 공식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7,000만 이란인의 자유, 이스라엘의 생존, 중동의 항구적 평화는 하나의 결단으로 수렴된다.
주권은 범죄의 방패가 될 수 없다.
이제는 ‘테헤란의 도살자’를 예루살렘의 법정으로 소환할 시간이다.
평화는 구걸로 오지 않는다.
정의를 집행할 때 비로소 쟁취된다.